최진영 「구의 증명」
03.02

 구의 몸에 칼을 댈 수는 없었다. 불을 댈 수도 없었다. 구의 몸으로 요리를 할 수도 없었다. 죽었더라도 구의 몸이다. 오래된 백설기처럼 변해가고 있지만 분명 구다. 살았을 적에 기대고 만지고 안기고 안고 핥고 빨던 몸이었다. 아름다움에 대해 생각한다. 구의 몸은 작고 말라서 아름다웠다. 우리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러니 분명 아름다운 순간도 있었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함께일 때 가능했다. 구에 대한 모든 것은 나도 알고 있어야 하며 내가 모르는 것은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 된다는 욕심.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을 구 혼자서만 품고 있는 것이 싫었다. 마음에서 나를 잠시라도 지우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구의 기쁨과 환희, 우울과 절망에도 내가 있어야 했다. 그 욕심은 오직 구만을 향했다. 담아. 우리를 기억해줄 사람은 없어. 우리가 우리를 기억해야 해. 스물세 살 봄의 언저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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